뜨거움에서 푸르름으로

― 철강과 농업을 잇는 GREF 브랜딩 이야기

철과 토마토,

그 이상한 조합에서 시작된 질문

처음 대한제강이라는 이름 옆에 ‘토마토’라는 단어가 붙었을 때, 어딘가 이질적인 풍경이 떠올랐습니다. 철을 다루는 공장에서 작물이 자란다니, 쇳물의 열기와 유리온실의 푸르름은 쉽게 어우러질 수 없어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 이질감이야말로 이 브랜드가 출발해야 했던 자리였습니다. 브랜딩은 종종 본질을 또렷하게 정의하는 일로 시작되지만, 때로는 전혀 다른 세계들을 어떻게 연결할 수 있을지 그 논리를 설계하는 데서 시작되기도 합니다. GREF는 후자에 가까웠습니다.


대한제강이 농업에 뛰어든 이유는 작물을 잘 키우고 싶어서가 아니었습니다. 이들은 철강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그러나 사용되지 못하고 공기 중에 흩어지는 열, ’폐열’에 주목했습니다. 철강 산업은 세계에서 손꼽히는 에너지 소비 산업이고, 그중 약 10퍼센트의 에너지는 폐열로 버려집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수치가 하나 있었습니다. 국내 농업이 1년간 사용하는 총 에너지량이, 제강 공정에서 연간 발생하는 폐열의 양과 거의 비슷하다는 점입니다. 그 열이 버려지지 않고 다른 방식으로 쓰일 수 있다면? 그 질문에서 이 프로젝트는 시작됐습니다.

GREF는 단지 스마트팜을 구축하고 농작물을 재배하는 시스템이 아닙니다. 산업 간의 경계를 넘나들며 버려지는 자원을 어떻게 새로운 순환 구조로 전환할 수 있는지를 실험하는 플랫폼이자, 그 과정을 외부에 설명하고 설득하는 브랜딩 장치입니다. 공장에서 발생한 열이 온실의 에너지가 되고, 농작물의 생장이 다시 새로운 생산의 이미지로 연결되는 이 구조 안에서 브랜드는 단순한 명칭이나 로고 이상의 역할을 요구받았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이 브랜드가 자연을 상징하거나 감성을 자극하는 방식이 아니라, 기술과 전환, 구조와 순환 같은 개념으로 말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정성이나 햇살, 자연 같은 키워드보다 ‘열의 쓰임’, ‘시스템의 연결’, ‘에너지의 흐름’이 더 어울리는 이름과 시각 언어가 필요했습니다. 브랜드는 이 새로운 구조를 설명할 수 있는 프레임이자, 생명과 산업, 푸르름과 뜨거움 사이의 간극을 이해 가능한 장면으로 번역하는 도구가 되어야 했습니다.

순환의 혁신, 전환의 브랜딩

대한제강이 관심을 둔 것은 농업 그 자체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주목한 건, 농업이 가지고 있는 ‘에너지를 많이 소비하는 구조’였습니다. 특히 유리온실처럼 인공적인 재배 환경에서는 빛, 열, 수분을 꾸준히 공급해야 하기에 막대한 양의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지금까지는 대부분 화석연료 - 가스, 전기 히터, 보일러, 태양광 등 - 에 의존해 그 에너지를 충당해 왔습니다. 여기서 질문이 생겼습니다. 그렇다면, 이 에너지 공급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꿀 수는 없을까?

철강을 만드는 공장에서는 엄청난 양의 열이 발생합니다. 이 열은 철을 만들기 위해 쓰인 후 대부분 다시 활용되지 못한 채 사라집니다. 이를 우리는 ‘폐열’이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만약 이 열을 외부로 보내, 완전히 다른 분야 - 예를 들면 농업 - 에 쓸 수 있다면? 철강 산업의 부산물이 농업의 연료가 된다면? 이 상상은 하나의 실험이 되었고, 곧 하나의 브랜드로 구체화되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GREF였습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브랜딩이라는 일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다시 묻게 되었습니다. 보통 브랜드는 결과물에 이름을 붙이고, 겉모습을 정돈하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GREF 프로젝트에서는 그 이상이 필요했습니다. 브랜드는 서로 다른 산업 간의 관계를 설명하고, 기술적 원리를 이해시킬 수 있는 언어가 되어야 했습니다. 즉, 철강과 농업 사이를 연결하는 ‘전환의 장치’가 되어야 했습니다.

브랜딩이 감정을 자극하는 것이 아니라 기술을 이해시키는 일일 수 있다는 걸, 이 프로젝트를 통해 분명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브랜드는 실체 없는 이야기가 아니라, 기술이 세상과 만나는 방식을 설계하는 언어이자 구조입니다. 그래서 GREF는 단순한 브랜드가 아닙니다. 열의 흐름을 조직하고, 새로운 에너지 경로를 설계하며, 전혀 다른 산업 간의 접점을 열어주는 하나의 시스템이자 플랫폼이었습니다.

우리는 이 시스템을 세상에 보여주기 위한 이름이 필요했고, 그 구조를 설명할 수 있는 디자인과 언어가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GREF라는 브랜드는 철과 식물, 산업과 자연, 뜨거움과 생장이라는 전혀 다른 요소들을 하나의 흐름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습니다. 보여주기 위한 포장이 아니라, 설득하기 위한 구조였던 것입니다.

이 프로젝트는 결과적으로, ‘기술과 생명이 만나는 접점’을 에너지 순환이라는 키워드로 연결하고, 그것을 브랜드라는 언어로 설명한 일입니다. 그 설명은 일방적인 홍보가 아니라, “이런 연결도 가능합니다”라고 제안하는 새로운 방식이었고, GREF는 그 가능성을 세상에 보여주는 하나의 통로가 되어야 했습니다.

GREEN FOUNDRY라는 이름이 말하는 것

브랜드가 철강과 농업이라는 새로운 연결을 보여주는 하나의 구조라면, 그 구조의 시작을 가장 먼저 드러내는 것은 바로 이름입니다. ‘GREF’라는 이름은 단순한 조어가 아니라, 이 브랜드가 무엇을 다루고 있는지를 은유적으로 전하는 설계 장치였습니다. 우리가 처음 제안한 이름은 ‘GREEN FOUNDRY’. 그린이라는 단어는 당연히 식물, 지속가능성, 친환경 등을 떠올리게 하지만, 그 뒤에 붙은 파운드리라는 단어는 전혀 다른 상상을 불러옵니다. 금속, 고열, 산업, 공장, 제조. 두 단어가 만났을 때 생기는 긴장감이 곧 이 브랜드가 가진 핵심 가치이자 전환의 힘이었습니다.

‘파운드리(foundry)’는 원래 금속을 녹여서 새로운 형태로 만드는 장소를 말합니다. 최근에는 반도체 제조업에서 칩을 위탁 생산하는 공장이라는 뜻으로도 쓰이죠. 우리는 이 단어의 본래 의미에 주목했습니다. 철을 녹이고 형상을 만드는 곳, 열과 재료가 만나 새로운 무언가로 전환되는 공간. 바로 그 지점이 이 브랜드의 실체를 가장 잘 설명한다고 생각했습니다. GREF는 농작물의 브랜드가 아니라, 에너지의 흐름을 바꾸는 기술적 공간이며, 농업은 그것을 실험하는 한 방식일 뿐입니다.

그래서 이름을 축약한 GREF는 단지 발음이 쉬운 브랜드명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의미 구조를 숨긴 압축어입니다. 친환경을 지향하지만 동시에 기술적이고, 공장과 같은 논리로 작동하지만 생명을 다룬다는 점에서, 이 이름은 그 자체로 상반된 이미지의 균형을 요구합니다. 여기서 균형은 모호함이 아니라 긴장감이며, 오히려 이질적인 두 세계를 동시에 품는 데서 오는 정체성의 힘입니다.

브랜딩 작업에서 가장 자주 받는 질문은 이것입니다. “무엇을 하는 브랜드인가요?” 이 질문에 대해 GREF는 단순히 “농업 브랜드입니다”라고 답하지 않습니다. 대신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GREF는 공장의 열을 생명의 온기로 전환하는 시스템이며, 그 과정을 시각적으로 설계한 이름입니다.” 그것은 브랜드 이름이면서 동시에 하나의 기술적 설명서이기도 한 셈입니다.

우리는 이 이름이 프로젝트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첫 문장이 되어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따라서 네이밍은 단순히 말의 조합이 아니라, 브랜드가 말하고자 하는 구조의 축소판이어야 했습니다. ‘GREF’라는 이름은 그렇게 만들어졌습니다. ‘푸름의 공장’, ‘녹색 제조소’, 또는 ‘생명을 위한 구조 실험실’이라는 다양한 이미지로 번역될 수 있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그것이 어떤 메커니즘을 상상하게 하는가입니다. 이름은 그 상상의 시작점이어야 했습니다.

농업 브랜드가 아닌

기술 브랜드의 이미지

이름이 구조를 암시했다면, 디자인은 그 구조를 가시화하는 도구였습니다. GREF의 시각 언어를 설계하는 데 있어 가장 먼저 염두에 둔 것은 ‘이것이 농업 브랜드처럼 보이지 않아야 한다’는 원칙이었습니다. 대개 스마트팜이나 농업 브랜드는 싱그러운 녹색의 풍경, 햇살 아래 자라는 작물, 정성 어린 손길 등을 주요 이미지로 사용합니다. 하지만 GREF는 작물이 아닌 시스템을 다루는 브랜드였고, 순환을 다루되 감성이 아닌 기술의 언어로 설득해야 했습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브랜드의 ‘분위기’를 디자인하는 대신, 브랜드의 ‘원리’를 시각화하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폐열이 생명의 에너지로 바뀌는 과정, 철강의 고온이 식물의 온기로 전환되는 흐름, 그리고 그 안에서 작동하는 공정적 논리들. 이 모든 것을 감각적으로 표현하되 지나치게 설명적으로 보이지 않도록 하는 일이 디자인의 핵심 과제였습니다.

따라서 시각 아이덴티티는 전통적인 농업 이미지에서 벗어나, ‘청정함’과 ‘기술감’을 중심으로 조율되었습니다. 컬러는 식물의 초록(GREEN)을 상징적으로만 사용하고, 전반적인 무드는 화이트와 실버를 기반으로 구성했습니다. 유리온실에서 반사되는 빛, 공장 내부의 금속 표면, 기계적인 선과 반복되는 구조물. 이 모든 이미지들이 함께 어우러져 GREF가 지닌 하이브리드 정체성 - 푸르름과 공업성, 생명과 구조, 자연과 기술 - 을 드러내도록 했습니다.

로고 또한 식물이나 자연의 유기적인 형태를 피하고, 공업적이고 정제된 조형으로 설계했습니다. 곡선보다는 직선, 상징보다는 구조. 심볼이 있다면 그것은 식물이 아닌 흐름의 다이어그램이어야 했습니다. 브랜드를 식별하기보다 설명하는 데 가까운 디자인, 보여주기보다는 작동 원리를 암시하는 조형. 이것이 GREF가 선택한 시각 언어의 방향이었습니다.

결국 디자인은 이 브랜드가 ‘무엇처럼 보이는가’보다 ‘무엇을 가능하게 하는가’를 보여줘야 했습니다. GREF는 새로운 농업을 상상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기존 산업이 갖고 있던 자원의 흐름을 어떻게 바꾸고 확장할 수 있는지를 드러내는 장치였기에, 그 이미지 역시 ‘전환’을 가장 정제된 방식으로 표현해야 했습니다. 감각은 감정이 아니라 구조의 단서여야 했고, 감성은 설명이 아니라 원리를 이해시키는 틀이어야 했습니다.

지속가능성 시대의 브랜딩 역할

브랜딩은 본래 ‘무엇을 대표하는가’에서 출발하는 질문입니다. 하지만 GREF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우리는 조금 다른 질문과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브랜드는 무엇을 상징하느냐보다, 지금 무엇을 바꾸고자 하느냐 그리고 그 변화의 실천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한 과제가 된 것이죠.

GREF는 애초에 제품을 알리기 위한 상업적 브랜드가 아니었습니다. 하나의 기술적 가능성 혹은 에너지의 흐름에 관한 실험이 먼저 있었고, 그 실험을 사회와 연결하는 언어로서 브랜드가 뒤따랐을 뿐입니다. 다시 말해 브랜딩은 이 프로젝트의 시작점이 아니라, 프로젝트가 세상과 만나는 방식이자 구조였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고민한 것은 ‘이 브랜드가 얼마나 잘 팔릴까’가 아니라 ‘이 브랜드가 어떤 구조를 설명하고, 어떤 전환을 실현하려 하는가’였습니다. GREF는 친환경 농산물의 브랜드가 아닙니다. 그것은 산업의 폐열을 수집하고, 다시 에너지로 변환하여 식물의 생장에 실시간으로 활용하는 기술적 순환의 흐름을, 설득 가능한 언어로 시각화한 하나의 구조적 실험입니다.

이러한 브랜딩은 대중에게 익숙한 접근이 아닐 수 있습니다. 소비자 중심의 감성적 서사도 없고 친환경을 강조하는 초록빛 포장도 없습니다. 대신 기술의 작동 방식과 자원의 흐름, 그리고 그 흐름이 만든 구조에 대한 설명이 존재합니다. 단순히 ‘친환경처럼 보이는 것’을 넘어, 진짜 친환경이 작동하는 방식을 보여주는 브랜드. 우리는 이것이 지속가능성 시대에 브랜드가 해야 할 역할이라고 믿었습니다.

많은 기업들이 ‘지속가능성’을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그중 얼마나 많은 브랜드가, 그 지속가능성을 가능하게 하는 내부의 구조와 시스템까지 설명할 수 있을까요? 브랜드가 단지 좋은 이미지를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실질적인 구조적 변화를 외부와 연결하는 매개가 될 수 있다면, 그때 비로소 브랜딩은 하나의 실천으로 확장됩니다.

GREF는 철강이라는 전통 산업에서 출발해, 생명을 키우는 기술의 언어로 이어졌고, 그 과정을 브랜드라는 형식 안에 담아냈습니다. 이 브랜드가 보여주는 건 이미지가 아니라 구조이고, 감성이 아니라 연결이며, 마케팅이 아니라 가능성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브랜드가 거창한 비전으로 기억되기보다는 필요한 질문을 성실히 제기하고, 작동하는 현실 안에서 실험과 개선을 멈추지 않는 ‘실천의 이름’으로 남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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